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문단 편집) === 문제점 === 이 때까지는 [[소련]]의 기밀주의 및 [[은폐]]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운영하는 [[RBMK 원자로]]는 구시대 원자력 발전 구조, 그 중에서도 특히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하는 [[노심]]의 한계로 인해 자기제어성이 낮다는 문제가 있었고 이것이 후술하는 '''대폭발로 치닫는 결정적 원인 중 하나였다.''' 보통 [[원자로]]는 [[내부]]에 [[출력]]이 높아져 [[고열]]이 발생했을 때 자체적으로 출력이 줄어들도록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었고 서방에서 사용하는 [[비등수형 경수로]]에서는 [[물]]이 냉각재와 [[감속재]]의 역할을 모두 하는 만큼 출력이 높아지면 물이 [[증기]]로 바뀌어 [[중성자]]와의 반응이 낮아져 자연스럽게 [[핵분열]]도 줄어드는 반면 RBMK는 물이 냉각재를 담당하고 흑연은 감속재를 담당하는 원리라 출력이 높아져 증기가 발생해도 핵분열이 계속된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이런 원자로 자체의 [[문제점]] 외에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건물 내구성 자체도 취약한 편이었는데, 통상의 원전과 달리 격납건물(사고시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건물)이 없다 보니 강철 상자 안에서 돌려야 할 원자로를 나무 상자에서 돌린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런 발전소가 용인된 것은 [[플루토늄]] 생산로를 변형시킨 구조라 설계가 단순했고 저농도 연료로도 고출력 효율을 낼 수 있는 데다 운전 중 연료 교환이 가능해 비교적 적은 돈으로도 많은 에너지 생산이 가능해서였다. 이런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자체의 문제점 외에도 [[실험]]의 운용 자체도 문제 투성이였는데 비록 일정 요소를 제어 하에 두고 있다고는 해도 임의로 비상 사태에 준하게끔 저출력 상태를 만드는 만큼 [[전문가]]들과 원전 설계자 등의 인원들을 대동했어야 했는데 발전소장'''만''' 동의한 채 정식 절차도 거치지 않고 현장의 인원들만 동원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 현장의 인원들도 만전을 다한 게 아니었는데 원래는 0시/8시/16시라는 8시간 단위로 발전소를 3교대로 운영하던 새벽조/정오조/저녁조 중 가장 발전소 업무에 숙달한 정오조가 이 실험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상술한 전력공급유지 문제로 새벽조가 이 실험을 담당하게 되었다. 원래 새벽조는 붕괴열 관리라는 비교적 간단한 업무만 숙달하고 있었는데 어떤 연습도 없이 일을 떠맡은 격이었고 현장에서 그나마 숙달한 인물이라 한다면 책임자인 댜틀로프와 수석 엔지니어 알렉산드르 아키모프 정도였다. 댜틀로프가 이 실험을 얼마나 [[안전불감증|가벼이 여기고 있었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결국 후술하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 원자로의 대폭발은 구식 원자로 자체의 안전성 문제점에 안일한 판단이라는 인재까지 겹친 [[총체적 난국]]이 빚어낸 대참사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